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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25일 (토) 23:49
소녀상 설립1 주년을 즈음하여

소녀상 설립1 주년을 즈음하여

2011년 가을, 미시간 코리언 타임즈 를 운영하고 있는 본인은 메스컴을 통해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 일본 대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우고 일본의 만행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운동이 이미 한국에서는 전국적으로 발전돼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 해103일 을 기점으로  많은 생각을 한 후 미시간 공공 장소에 기림비를 만들어 우리 한인 위상을 높이고 나아가 세계로 알리는데 동참을 하기로 결심하고 독립유공자 자손이신 김종대 당시 미시간 한인 문화회관 회장님을 먼저 연락해  현재 미시간  한인들의 관심사를 논의했다당시 뉴저지에서는 해외 최초로 기림비를 설치해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어있는 상황에 미시간은 아직 전혀 기미가 없었다.

김운성 조각가, David Shin  초대 기림비 위원 창립자,시드니 랜츠, 시 의원,김서경 조각가, 김득렬 초대 위원장.

일단 독립유공자 아드님이신 김득렬 원로 목사님과 김종대 회장님과 따로 미팅을 해서 같이 시작 하기로 했다.  시작을 한 본인으로서는 김득렬 원로목사가 회장을 맡아 시작하는 것이 적격이라고 생각하고 3 ( 김득렬 원로목사, 김종대 문화회관 회장,David Shin) 으로 구성되어 시작을 하게 되었다. 먼저 기림비의 정보를 위해 뉴욕에 있는 관계자(박재진 변호사)들과 연락해 기림비 전체 정보를 입수해 도면을 그리고 장소를 물색하고 비석의 디자인과 계약절차와 각 시의 건축법을 알아보고 김종대 회장님과 김득렬 목사님께 보고하고 많은 진행을 했다. 비석을 만드는곳에 가서 비석을 보고 가격을 알아보고, 사진을 보내 김득렬 목사님과 김종대 회장님께서 보시고 의견을 나누시게 하고 당시 뉴저지 비석을 담당한 관계자와 연결 되었는데 박재진 변호사님은  기림비에 있는 그림의 저작권도 다 주겠다며 제작도 뉴욕에서 해 올 수있게 되었다.

일단 장소는 문화회관 태극기 게양대 옆으로 임시로 정하고 시작을 했다. 본인으로서는 독립유공 후손이  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진행하였다.

 몆달 후 미시간 코리언 타임즈 의학 코너를 진행하시는 박문재 박사와 의학상식 비디오 제작중에 지금 진행하고 있는 기림비 설립 준비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소녀상 건립 아이디어를 처음 제공한 건립위 부위원장 박문재 의학박사 내외. 박 박사는 뉴욕타임즈에 8만달러를 들여 미주 한인 최초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광고를 싣기도 했다.

박문재 박사는 적극 찬성하고 전적으로 협조 하시겠다고 하시면서  해방전 세대이기에 이 부분을 잘 알고 있다면서 남산에 살때 직접 목격한 사실을 말해 주었다. 남산에서 살때  흰저고리를 입은 앳띤 소녀 약 13-16 세 정도 되는 소녀들 수십명이 두줄로 일본 경찰들의 인도를 받으며 어디론지 가는것을 기억 한다면서 당시 실제로 끌려 가는것을 목격한 사실을 처참한 마음으로 눈물을 보이며 이야기해주셨다어린 나이에 그는 저 소녀들이 어디로 가나 궁금해 어머니께 여쭈어보았던 기억을 되살리며 말하는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젖어 있었다.

격동의 시대를 넘고 넘은 박 박사의 증언은 우리 모두에게 진심으로 필요한 시대적 증언이라고 생각 되었다. 또한 박문재 박사는 지금(당시) 일본 대사관앞에 놓여있는 소녀상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보이며 소녀상이 미시간에 놓인다면 해외로서는 처음으로 놓여지게 된다면서 의견을 제시 했다본인은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되어 위원들과 미팅을 제시하고 참여를 부탁했다.

몆일후 바로 김득렬 목사님과 김종대 회장님께 전화로 자세한 사항을 들어 보는 기회를 마련하기로 했다. 본인은 기림비 준비 위원회 위원이면서 사무 행정을 다 관장하고 정리했다. 당시 기림비로 정해 일을 추진 했지만 더 좋은 아이디어가 상정되면 본인은 지체없이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에 여러 분들을 아이디어를 들어 보기로 했고 처음 박문재 박사의 아이디어는 훗날 결정적인 아이디어로 채택 되었다.

일단 순서에 의해 3인 위원회에 박문재 박사를 초청 그의 아이디어를 듣기로 하고 이를 박문재 박사께 알렸고 소녀상의 정보를 마련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시게 했다. 당시 김운성 조각가와 연결해서 동상의 가격, 스케치, 도면을 받아 정리하고,도서관에 직접 가서 David Ewick 관장과 직접만나 협조를 요청했고 박문재 박사께는 사진을 드려서 설명을 하도록 해 드렸다.  당시 사우스 필드 도서관에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도서관 측과 가까운 시드니 렌스 시 의원을 초청하기로 하고 박문재 박사와 미리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 후일 도서관과 홀로코스트 의 미팅을 시드니 렌스 시 의원께 요청 미팅을 하게 되었다.

일단 처음 시작한  3인과 박 박사의 만남은 서울가든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김득렬 목사와 김종대 회장은 흔쾌히 소녀상의 방법이 좋다고 하시고 그 방향으로 가는것이 좋다는 의견을 다같이 동의했다.

곧이어 처음으로 소녀상 설립에 대한 첫번째 공식회의가 문화 회관에서 열리게 되었고 본인은 최초 제안자로서 취지를 설명하고 경과를 보고 했다. 아울러 박문재 박사는 프레젠테에션을 해서 소녀상에 대한 많은 정보를 공유 했다.

김득렬 목사가 임시 회장으로 회의를 이끌었다최초 참석자로 : 김득렬목사,김종대 회장, 씨드니 렌츠 의원, David Shin 대표, 박문재 박사, 김욱 이사, 김병준 이사, 김영호 이사, 조영화 한인회 황규천 한인회, 등이 참여 했다이 회의에서  과반수 이상으로 소녀 상으로 확정되었다. 다음 회의는 약 한달후 같은 장소에서 열기로 합의 하고 회의를 마쳤다.

본인은 이번 일들이 여성 인권에 대한 일이라고 생각 하고 각계 각층을 상대로 도움 요청을 시작했다.

먼저 여성문제 이기에  한미 여성회 회장께 연락을 해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다수의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바라고 한미 여성회의 월례회의에 참여해 설명회를 갖겠다고 하고 발언할 시간을 줄것을 요청했다.

2012년 그해 늦은봄 한미여성회의에 박문재 박사와 김종대 회장과 본인이 참여해 하기로 했으나 박문재 박사와 본인만이 참여한 가운데 미리 설명도 했지만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 했다이후 월례회에 많은 회원이 참여해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협조를 하겠다고 했다.

한달후 다시 열린 기림비 위원회에 한미 여성회측에서 임원분들이 참여 했다. 그런데 이미 확정된 소녀상을 다시 다수결로 또 확정짓는 번복이 있었다. 또한 참석한 여성 회원들을 무시하고 발언권과 투표권을 주지않아 본인으로서는 여성의 인권문제인데 여성을 폄하하는 식으로 보여져 불쾌했지만 다음 회의를 하기로 하고 당일 회의는 끝냈다.

한달후 회의를 모색하는중 본인은 한미여성회에 더 많은 회원이 참여 할 것을 요청했다.

한달후 다행히 한미 여성회의 에서는 더 많은 회원이 참여했고 본인은 회의 시작전 모두 참여한 분에게 공정하게 위원 자격을 부여 할 것을 요구,  한미 여성회 임원 한사람 한사람 거수로 위원으로 받아들이기로 민주 행정원칙에 의해 과반수 이상의 결정으로 확정되어 정상적인 회의를 했다.

우선 김종대 위원장의 사임으로 김수경 위원이 회장으로 선출되어 다음 회의를 이끌게 되었다. 여성 인권 문제이기에 여성이 리드를 하는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 되었고 다음회의는 오클랜드 대학 헬스 빌딩 회의실에서 하기로 결정되었고,  한미 여성회의 주도로 다시 새로운 행정운영 체계를 갖추게 되었는데 그러는 동안 김종대 회장과 박문재 박사 와 본인은  결정된 소녀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우스 필드 시 의원인 씨드니 렌츠 의원과 함께 시 도서관에 보드 미팅에 참석해 보드 맴버들과 회의를 통해  많은 진전을 해서 도서관 입구에 세우기로 잠정 결정 되었다.

David Ewick 관장과 회의 마치고

이는 도서관 Data 에 의해 년간 회원수와 방문인을 조사 해본결과 636,000 명이상의 시민 또는 타 지역 학생들이 견학 또는 다른 많은 과외활동을 통해 방문된다고 David Ewick 관장은 보드 미팅에서 보고 하였다이는 많은 어린 학생들과  시민이 교육적인 차원에서 여성 인권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큰 효과를 가지게 되는것으로 여겨졌다.

현재 한인문화회관의 방문객은 2009-2010년 공부부장을 역임했을 당시 조사한 결과로는 년간 약 800여명을 넘지 못했다삼일절 행사 약 80, 단오행사 약 80, 임원회의 년간 100 여명,한인회 및 기타 행사 약 300명 의 한인들과 10% 정도의 미국인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본인은 보고있다. 그렇다면 년간 800(많이 방문할때를 기준)이고 도서관은 2011년기준   636,000 명이  순수미국인 방문자이기 때문에 더 효과가 있는것은 말할 여지가 없다. 그렇기에 싸우스 필드 도서관에 세우기 위해 더 노력을 했던것이다.

본인은 소녀상이 설립이 되고 나서도 세미나와 각종 행사를 꾸준하게 진행해 지속적인 관심사와 여성인권 기구들과 연계해 다음세대에까지 교육적인 차원으로 지속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또한 설립시 정상적인 행정절차를 통해 첫 번째 소녀상으로  메뉴얼을 만들고  타지역의 활성화를 리드하고 돕고 발전시켜 나간다는 뜻이 전채 위원들의 꿈이며 시행할 목적이었다.

홀로코스트 스티븐 골드먼 관장과 회의중

다음으로는 홀로코스트 스티븐 관장과의 미팅을 통해 협조를 요청했고 스티븐 골드만  관장은 흔쾌히 협조 하겠다고 하면서 기금마련까지 도울 수있다고 하면서 미팅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스티븐 골드먼 홀로코스트 뮤지엄 관장과 회의 마치고

이즈음에 그간 본인은 개인사업을 전폐 하다시피 뛰고 다녔지만 돌아오는것은 시기 질투 투성으로 많은 것을 시작하고 결실을 눈앞에 두었지만 밥상 차려 놓으면 숟가락 들고와 먹는 무리들의 의해  처음같이 시작한 동료까지 사임을 종용해 대를 위해서 본인은 사임하게되었다.

처음 아이디어를 가지고 먼 훗날 미래를 바라보며 실행해 온 모든 것을 대를 위해 하루 아침에 손을 놓기로 했다. 그 후로 김수경 위원장의 보고가 가끔 있었고 박문재 박사의 보고도 있었다김수경 위원장측에서 요청한 본인이 만든 모든서류 (계약서 포함)를 이메일로 전부 넘겨주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과 함께 본인은 잠잠하게 일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런 과정으로  미시간에 소녀상 위원회가 설립되고 발의되었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나 박문재 박사와, 김수경 위원장은 나를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만나보니 본인이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일들이 아니었다. 김수경 위원장이 매우 힘들다는 이야기와 내부 문제를 이야기 하게 됐는데, 먼저 내가 요청한 사항들을 나열해 말했다.  본인은 아이디어를 많이 제공했지만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고 사장된 부분이 많은것으로 드러났다.

첫째는 당시 시행하고 있는  위원회의는 미시간 주정부에 정식 등록되어 기부금을 받는 절차를 하고 있는지 또는 위원회 각 부서의 활동 상황은 어떤지 를 요청했다김수경 위원장은 단지 회의를 7-8시간  연속회의를 하는게 너무 힘들다는것이다.

다음 질문은 전에 연계된  싸우스 필드 도서관과 홀호코스트가 지속적인 교류를  힘을 다 하고 있는지였다.

또한 홀로코스트 스티븐 관장과의 연계를 질문했다. 다 잘되고 있다고 하고 한국인 여성 변호사가 도움을 주는 것 같이 말했고  IRS 등 행정을 맡을 미국변호사도  있다고 전해왔다. 참 다행스럽게 잘 되고 있는 모습이지만 내부적인 알력행사가 있는 것으로 보고 되었다. 화합이 잘 안되는 과정에 김수경 위원장이 매우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름 짐작되는 일들이었다.

그러한 예상으로 본인은 사임을 할때 영문으로 장문의 글을 위원들에게 사임서를 보냈던 것이다. 이번일을 시작 했지만 대를 위해 전 단체가 화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임을 하고, 처음 시작한 사람으로서 지금 김수경 위원장을 지지하고 여러 관계자들은 결속하고 협력해 결실을 맺기를 바라고 젊은 이들이 앞장서서 일하는데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한인사회 폐습인 고정적인 인사가 뒤엎으려  하지말고 김수경 위원장을 도와 개인의 명예와 수훈을 앞서기보다 이 일이 민족적으로 여성인권적으로 잘 되기를 바랬다.

처음 시작한 사람으로서 많은 행정일을 했던 사람으로서 여러가지 아이디어도 있는데 사임해야 하는것은 지금 생각해 봐도 미래 발전적인 일이 못된다는것을 생각하고 있지만 당시 시기 질투에 본인의 이름이 없기를 바람이었고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를 바랬다.

약자나 2세들에게 한인사회 동참을 잘 권고 하지않는것은 그들에게 큰 상처를 남기는 결과가  지금의 한인 단체는  행정적으로 미래 지향적이지 않는 한 지속되기 때문이다.

본인은 김수경 위원장에게 회의는 4시간 이내로 하고, 각자 2분식만 발언할 시간을 허용해 간략하게 요점만 말하도록 하고 최대한 모두 발언을 하도록 해야하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 해줘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또한 단체는 분명히 어느 단체에 속하지 말고 독립된 단체로서 미래 미시간만의 단체가 아니라 세계 만방에 알리는 단체로 서야 하며 단독 IRS 번호를 가지고 주정부와 연방정부에 등록된 정식 법적인 비영리 단체로 서야 한다는 말을 해주었다왜냐면 한미 여성회의 단독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이다당시 소식을 전해오기는 변호사를 위원으로 초청해서 하는걸로 알려왔으나 전혀 결과는 없고 한미여성회에 속한 부서로 세무보고가 되는걸로 언론에 알려져있다.

 

시간이 흘러 우여곡절 속에 문화회관 앞에 동상이 서게 된다고 연락이 왔고 김종대 문화회관 회장은 고심을 하고 있었다. 김 회장은 독립유공자 자손으로서 당연히 소녀상에 관심이 많았고 처음 시작한 위원으로서 받아들여야 하지만 여러가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하고 법률전문가를 만나 협의했다. 법률전문가는 문화 회관에 소녀상이 문화회관에 있는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는 평가를내놓았다.  예를 들면 문화화관은 미국에 각기 다른커뮤니티와 교류해야 하는데 일본 커뮤니티와는 소녀상 때문에 교류를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처음에 서술한데로 소녀상 설립의 본질인 교육적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공공 장소내에서 예를 들어 싸우스 필드 도서관내 입구에 설치된다면 교육적 가치가 클것으로 평가 되고 있지만 문화회관에 세운다면 다 아는 한인과 일부 미국인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싸우스 필드 도서관내에는 오도튜룸과 회의실이 마련되어 항상열려있었다.

두번째는 법률보호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것이다. 누구도 법률 조언을 꺼려 할 것으로 보고있기 때문이다. 미시간 지역 특성상 자동차 산업에 일본 자동차 산업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고 또한 법률 조언도 일본 상권과 연관되기 때문에 누가 나서려고 하질 않게 되기 때문이다. 사업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렇다는것이다.

 또하나는 빌딩 코드에 맞게 시측과 연게 되어 죠닝 클리언스 와 기타 서류상 행정적인 절차를 거쳐야 되기에 싸우스 필드 시 빌딩 부서와 연계, 죠닝 써티피케이션(zoning certification)을 받아야  하는것은 기본 상식이다. 김종대 회장은 최대한 합법적으로 소녀상을 세우고 정정 당당하게 일본 정부에서 꾸미는 법적대응을 해야한다는 일념으로 최대한 합법적으로 시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후 씨드니  랜츠 싸우스 필드 시의원을 만났다박문재 박사를  동영상 의료 상식 취재하는 과정에 만났는데 그는 소녀상 설립에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말해주었다. 박문재 박사는 일본 정부와 현지 일본 상공인들이 그간 우리가 세우려 하던 소녀상 방해 공작을 했다고 본인에게 전했다일본의 대 기업인 덴죠 기업 부사장과 일본 상공인, 싸우스필드 도서관장과 일본 디트로이트에 상주한 일본 총영사관 총영사가 블룸필드에 있는 총영사 관저로 초청해 저녁만찬을 했고 당시 참석한David Ewick 싸우스 필드 도서관장은 당시 참석한 모든 일본 인사들의  명함까지 전부 전해 주었다. 그리고 당시 모든 사실을 시 의원을 통해 전해왔다.

본인은 David Ewick 관장을 당장 만나보고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 보기로 하고 미팅 요청을 했다.  3층의 관장회의실에서 관장과 단독으로 만났다. 몇번의 만남으로 위원회를 주선해주고 적극적인 태도를 해왔던 관장이 이렇게 변한것에 대한 분노감도 치밀어 올라왔다. 별로 즐거운 표정들이 아니었지만 친구로서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했다.

일단 먼저 기자 신분으로 만났으니  녹음을 하는데 동의를 구했다. 그는적극 동의했다. 미국인으로서 도서관장으로서 사실을 말해 주겠노라고 하면서 본인에게  이때까지 연락이 없다가 왜 이제 나타났느냐고 물었다.  사실 사임을 했어도 외부적으로 크게 알리지 않았고 또한 나를 돕는 모든 이들에게  소녀상 설립사업이 현재 진행형으로 보여지게 되기를 바랐기에 관장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관장은 본인에게 그간 본인과  문화화관 회장, 박문재 박사와  마지막 회의를 한 후 그 누구도 한인사회로부터 연락이 없었고, 바로 일본 경제인 단체와 일본 총영사의 초청 등 일본인들이 들이닥쳐 적극적인 행동으고 도서관을 투어하고 도서를 기증할것을 약속했다는것이다.

덴죠라는 큰 회사의 중역들과 일본 총영사관 총영사와 함께 방해 공작에 성공한 것이다.

당시 한인측에서는 연락도 없이 싸우스 필드 시 측과 소식이 끊겼다는것을 알고 자세한 내막을 전부 녹음하고 매우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면서 그 치욕적인 기분을 느꼈다.  목숨을 바쳐  선조들이 했던 독립운동은 아니라도 그 마음의  극히 일부분을 느끼게 되는 울컥한 마음으로 돌아 오면서 홀로 코스트 스티븐 관장과도 연락을 해 보기로 하고 이 일들을 세상에 알리기로 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물론 대한민국 시카고 총영사관에도 수집한 모든 정보와 함께 알렸다. 총영사관에서도 도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일본은 자국 정부, 민관, 기업까지 나서서 엄연한 사실을 감추려하는 두번의 치욕적인 일들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정부도 나설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그러나 총영사관 측은 외교적인 문제라 민간인들이 주도하는 일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겠다는 눈치였다.

추후로 들은 소식은 김수경 위원장을 만나고 적극적인 행보를 요청했지만 얼마후 개인사정으로 사임하고 차승순 위원장이 소녀상 설립 위원장을 맡아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만 알려졌다.

결국은 싸우스 필드 도서관과 홀로 코스트에도 소녀상은 설치되지 못했다.

마지막 보류인 문화회관 정문 옆에 놓이게 되어 본인에게 이메일로  제막식정보만 와서 취재하기로 했다.

김종대 문화회관 회장은 소녀상 제막식에 앞서 문화회관 청소에 대한 도움을 요청해 왔다.

급히 전화를 걸어왔기에 전날 가서 청소를 하고 제막식을 할  준비를 하면서 미시간 주에 등록한 한인 언론인 협회장으로서  김종대 회장에게 프레스 룸을 만들어 달라는 공식적인 요청을 했다. 당일 언론인들, 기자들이 취재하고 기사송고 하는데 불편이 없게 하기위해 인터넷과 함께 프레스룸을 만들기를 요청한 것이다.  김종대 회장은 쾌히 승낙을 해주었고 사무실을 사용하라는 허락을 했다.

늦은 시각까지 봉사자들은 다음날 있을 제막을 위해 열심히 일을 마무리했다. 김종대 회장도 땀을 흘리며 정리정돈 하는데 일조를 했다.

 

드디어 소녀상 제막식 날이 되었다.

당일 도움을 주기로한 촬영 스텝을 일찍 상주시켜 일찍 타 지역에서 오는 기자들이 불편이 없게 하기위해 사무실에 안내문을 붙이고 기자들을 맞이하라고 연락을 했다.

얼마후 집에서 출발 하려고 하는데 프레스룸을 사용 할 수 없다고 촬영 스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급하게 문화회관에서 사용할 장비를 옮겨실고  다른 스텝들과 함께 달려가서 보니 이미 사무실에 제막식 행사 사회를 보게 되어있던 관계자2명이 있었다. 관계자들에게 설명을하고 김종대 회장께서 허락하에 사무실을 프레스 룸으로 사용하기로 했다는  설명을 하고 인터넷 점검과 함께 자리를 정리, 기자들이 사용 하는데 불편이 없게 했다.

얼마후  무슨 큰소리가 있어 들어가보니 박원민씨가 톤이 높은 소리로 다 나가라는 소리를 프레스 룸에서 하고 있었다. 바로 들어가 무슨 일인가를 알아보니 박원민씨가 어린 인턴들까지 있는 룸에 와서 나가라고 소리를 친것이다이미 박원민씨는 밖으로 나가고 프레스룸에 있는 인턴들은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 박원민씨를 찾아 무슨일인지를 물어 보왔지만 욕설을 하며 저쪽으로 파킹랏 쪽으로 가자는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가서 한바탕 하고 싶은 생각이 머리 끝까지 나왔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바로 김종대 회장님께 전화해서 자초지정을 전했더니 매우 언짢아 하시고 곧 문화 회관에 도착 하신다고 하셔서 한가지 질문만 했다. 박원민씨의 문화 회관 직책이 무엇인지를 여쭤보았다. 발랜티어 일것 같으나 이런일(기자를 강제로 나가라고 하는 일) 을 결정할 직책이나 직위는 아니다라고 하시면서 회장의 결정한 사실인것을 이야기했는데도 그런행동을 했다면 문제가 있다라고 하시면서 곧 도착한다시면서 몆분후 도착 했다.

김종대 한인 문화 회관 회장은 사무실에 들어와 상황을 파악하고 이러면 안된다는 말을 큰소리로 하시면서 본인에게 계획대로 시행하라고 했다. 당시 김병준 이사도 함께 있으면서 자초지종을 듣고  본인에게 그대로 하라고 말했다.

정말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하극상을 영화에서 보는것처럼 보게 되어 본인도 새삼 느끼는 바가 많았다. 미시간에 한인단체가 깡패집단처럼  되어 가는것은 민족적이나 2세들에게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보지 않아야 할 것을 보게되어 대단히 유감스러웠다.

더구나 박원민 씨는 교회에서 집사라고 하는데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겠다고 집사, 장로가 되고 밖에서는 거지만도 못한 깡패 짓들이나 하면서 자기 정당화를 일삼고 정말 구역질 나는 사회를 이끄는 우리네 지도자들의 모습은 참 가관이었다. 법적 행정적 직무를 수행하게 한다는 기본 행정을 알면서 회장을 무시하고 권리를 빼앗으려는 행위는 우리 후손들에게 상처를 남기는 결과를 낳게 되고 절대적 수작으로 다른 한인들의 공정한 참여를 방해하고 불법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것이다.

또한 타당치도 않은 변명으로 자기 정당화를 일삼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는 미래상을 나타내고 있다.

제막식 당시 박원민씨가 일으킨 소동과 관계해 오히려 본인을 비난한 오동수 전 케이파이 회장은 미시간 코리언 타임즈 스텝에게 사장(본인)을 폄하하는 얘기를 해 물의를 일으켜 후일 본인에게 사과한바 있다. 이처럼 전후내막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폄하하는 이유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잘 모르지만 정당한 증거도 없이 잘못된 것처럼 꾸미는 conspiracy(작당모의) 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후일 반드시 책임을 물게 될 수있다. 한때  31대 한인회 당시 언론에 31대 한인회가 잘못이 있다고 언론에 발표한뒤 31대 공보부장의 항의에 적절한 증거 제시를 못하고 바로 사임한 일도 있다.

본인은  기림비 위원회를 처음 발족시킨 장본인으로서 처음 아이디어를 내고 법적 행정적  애를 쓴게 사실이다.   공로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기자이면서 언론인 협회를 발족한 현 회장으로서 책임이있는 문화화관 회장이 결정한 사항을 일개 직책도 없고 자격도 없는 자가 나가라는 행위는 하극상을 일으키며 전개하고 다른 기자는 못오게 하는 못된 행위는 어느 누구에게나 해서는 안되는 행위이다.  소녀상 설립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한 박문재 박사는  아무도 공식적인 초청도 하지 않았다고 본인에게 말했다. 그래서 재막식을 보지 못하고 다음날 밤 혼자 찾아가 소녀상 동상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왔다.  박문재 박사는 약 5천여불(단일 최고 액수 처음 당시)을 기부했으며 미시간 최초 소녀상제막 아이디어를 낸 위인이다.

우리 한인 사회에는 누가 밥상 차려놓으면 숫가락을 들고 쫓아와 남의 밥 뺏아 먹는 파렴치한 행위가 지속되고 있어 과연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인재들과 미래 지향적인 사회를 만들 수 없게 되는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된다.

김운성 조각가 전하는 친일 인명사전이 문화 회관에 전달 되었는데 김영호 이사장이 회장의 협의없이 회장이 있는데도 친일 인명사전을 대표로 받아야 하는 지도 의문이다. 당일 문회회관을 법적 행정적 대표하는 회장께 여쭈어보았지만 회장은 모르는 사실이라고 전했다. 행정체계를 무시한 행태를 우리 후세에 보여주어서는 안된다.  고유의 위계 질서를 조그마한 명예 이익에 져버리는 실수를 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모두가 생각해 볼 만하다.

 

     이번기회로 그간 기림비와 소녀상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몆가지 생각을 말하고 싶다.

     1.처음 시작할때 기림비 소녀상은 한인만의 소유가 아닌 전세계의 여성 인권을 위한 교육적 차원의 지표로 삼고 미국사회 공공 장소에 세워 한인뿐만 아니라 미국 사람과 세계인이 공감하고 지속적인 교육적 지표 나가야 한다는 취지였다.

:미국사람이 많이 이용하는 도서관 앞에 세워 어린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공감하게하고 기념식, 글짓기,소풍을 오게하여 모든 사람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제막 후에도 미래 지속적으로 이벤트를 만들고 타 인권 단체와 참여, 공감하는일을 하게 해야한다.

 

      2.법적 행정적 적법한 (건물, 빌딩, 시의 건축법 준수) 환경을 스스로 지키며 귀감이 되게 한다.

           3.메뉴얼로 만든다. 처음 시작할때 소녀상 계약 절차와 유통관계, 보관 관리 차원의 대책을 마련 메뉴얼을 만들어 모든 진행상황 메뉴얼을 다른 타 지역에 모범적인 진행 메뉴얼로 전달 해서 더 많은 소녀상이 제막될 수 있도록 하며 법적 행정적  대책이 되도록 한다.

           4.소녀 상의 아이디어를 낸 모든사람들을 존중하며 좋은 아이디어가 실현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장려하고 보호한다.

          5. 한인 단체의 소유 또는 건물,토지에는 제막하지 않는다.

A)   한인회나 문화회관은 기본 회칙에 나와 있듯이 타 커뮤니티 즉(일본) 커뮤니티와도 교류를 하는것을 원칙적인 일이고 타 커뮤니티와 교류에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김종대 회장은 독립유공자 자손이지만 타 커뮤니티와 교류을 해야한다는 기본적인 통상 커뮤니티 윤리에 한인문화 회관에 제막을 재고 할것을 요청한바 있다.)

당시 싸우스 필드 도서관은 도서관장의 집계 2011년  636,000 만 추정 도서관같은 곳에 설치 주장을 하고  전문 변호사의 권유로  문화회관 제막 보류 요청을 했으나 현재는 문화화관에 설치 년간 한인 800여명 과 아는 미국인 가족만 방문하는것으로  타 커뮤니티와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다 아는 한인들만 보고있어 효과가 거의 없고 홍보활동의 하나인 로칼 미국 미디어와 연계도 되지 않은걸로 나타나있다. 홍보효과를 최대한 계획수립으로 제막시 각 미디어를 초청 큰 효과를 내야 한다.

         6.행정 법적인 권리를 젊은이들에게 넘겨주고 자립할 수있게 끝까지 돕고, 인정하고 육성 해야한다. 젊은이가 리드하는 행사는 방해 또는 뺏지말고 펀드를 모아 돕고 관혀 하지말아야 한다.

  

        7.제막후 관리 체제와 펀드 조성, 이벤트기획, 컨퍼런스, 글짓기대회, 시낭송, 성악인 초청, 연예인 초청행사, 등 다양한 문화 예술을 접목시켜 활동을 한다. 다음 세대에 모든 행사 관련 지속적으로 여성인권 차원에서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준다.

        8.여성인권문제 교육적 지표로  영원히 후세에 전하는 체계를 갖춘다.
  

          자료기사. 링크

           http://detkr.com/board_view_info.php?idx=22253&s_where=all&s_word=%B1%E2%B8%B2%BA%F1&page_num=9&seq=111

      

          기림비 최초 발의자 김득렬 원로목사김종대 문화회관 회장,David Shin 함께

           admin@mk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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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18 () 17:34

[단독]'소녀상 보호 필요하다' 시드니 랜츠 싸우스 필드 시의원 경찰 방범순찰 요청


이제는 말한다, 기림 비석이었다 연재 예정


씨드니 랜츠 싸우스 필드 시의원(미시간 코리언 타임즈 단독 인터뷰)

(싸우스 필드=<미시간주>미시간 코리언 타임즈)David Shin 기자

미시간 한인 문화 회관에 세워진 소녀상의 도난과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랜츠 시의원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시드니 랜츠 싸우스 필드 시의원은 18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싸우스 필드 경찰에 소녀상 방범 순찰을 요청했다면서 저녁에 예고없이 방범 순찰을 할 것이라고 전해 왔다.

디트로이트 일본 총영사관 초청장(싸우스 필드 도서관장 앞으로) 

랜츠 의원은 친한의원으로 94세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렬적으로 한인을 돕는 시의원이며 유태인으로서 초창기 기림비 위원회 회의시 참여하고 홀로코스트 박물관장과도 직접 연결을 해주었고싸우스 필드 도서관 회의때마다 적극적으로 소녀상 설치를 주장하고 이번 소녀상 설치때 행정적인 부분을 도왔던 고마운 의원이다.

김종대 현 한인문화 회관 회장은 랜츠 시의원이 오래전 미시간 한인 문화 회관 설립때도 행정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다고 밝히면서 한인 행사에 두루 초청돼 한인들과 친숙한 분이라고 말했다.


초청장 (씨드니 랜츠 의원 제공=도서관장 이 시의원께 제공)

본보와는 처음 기림비 위원회 설립때부터 함께 했고 디트로이트 일본 총영사의 방해 공작때 적극 조사에 나서는 등 기림비의 중요성을 홀로코스트와 연결해서 지지해주었다.  스티븐 골드먼 홀로코스트 박물관장과 미팅 주선후 본보 대표가 한미여성회 회원들을 초청하고 대화의 장을 만들었다그 자리에서 골드먼 관장은 적극 지원을 하겠다고 말하고 요청한 기림비 자문위원도 맡겠다고 약속했었다.

이번 소녀상 제막식 전날 본보는 랜츠 의원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다음날 있는 행사에 초청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접하고 랜츠의원에게 무조건 참석을 종용했고, 16일 행사장에서 많은 기자들과 시의원으로서 소녀상에 대해 행정적인 설명을 하고 끝까지 돕겠다고 말했다. 18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그는 생이 얼마 남았는지는 모르나 한인 동포와 소녀상을 위해 할 일은 끝까지 하겠다고 전했다.

일본 총영사관에 참석한 관련자 명함 제공(씨드니 의원제공=도서관장 제공)

한인 사회는 물론 한국정부는 이러한 친한 시의원에게 더욱 관심을 갖고 공적을 인정하고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이렇게 무명으로 오랜 세월을 한인 사회에 봉사했는데 우리가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숨은 공로자를 찾아내 상을 주는게 아니라 그저 아는 사람들끼리 상 나눠먹기 식으로 감사패를 주고받는 한인사회 행태를 보며 씁쓸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본 기자는 미시간에서 초대 위안부 기림비 건립위원회 위원이면서 최초 제안자로서 처음부터 어떻게 시작되고 현재까지 왔는지 역사적 사실을 글로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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