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뉴스 한인소식 문화 TV-뉴스포인트 생활 정보 커뮤니티 한인 디렉토리 업체정보 live 방송 발행인 칼럼

2018.01.20 (토)
월드뉴스
스포츠/연예
미시간 한인
북미 뉴스
IT/과학
전문가 칼럼
어피니언
발행인 칼럼
정치/경제
비지니스
Investigation
> 뉴 스 > 어피니언
2017년 01월 09일 (월) 06:40
미주 한인의 날에 돌아보는 서재필의 꿈

1885년 6월1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항. 일본 요코하마에서 출발한 씨티오브페킹 호가 도착한다. 미주 한인 이민역사의 상징적 인물로, 5년 후 한인 최초로 미국 시민이 되는 서재필이 박영효, 서광범과 함께 배에서 내렸다. 삼일천하가 끝나자 서둘러 일본으로 도피했던 갑신정변의 주역들은 일본 체류가 위협을 받자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서재필 일행은 단연 눈에 띄었다. 6월 19일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은 '은둔의 나라 망명객들, 반란 끝의 표류자들, 샌프란시스코는 진보당 세 지도자들의 피난처'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이들을 소개했다. "한때 최고의 영화를 누렸고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자들이지만 지금은 서양의 낯선 도시에서 친구도 없이 생계가 막막한 신세"라며 "그러나 이 망명객들은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을 진보적 목적을 이루는 과정의 희생자로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이때 서재필의 나이 21세. 그 나이에 '풍운아'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엄청난 일을 겪었다. 1864년(고종 1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한 서재필은 양어머니의 주선으로 안동김씨 세도가의 집에서 성장해 김옥균·박영효 등 개화파 인사들과 교유하면서 개화사상을 접하게 됐다. 1884년 12월 김옥균이 주도하는 갑신정변에 가담했고 정변이 실패하자 '대역죄인'이 되어 일본으로 도주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정변의 주역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뿔뿔이 헤어졌다. 혼자 남은 서재필은 낮에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저녁에는 YMCA 야간학교에서, 일요일에는 교회를 다니며 영어를 배웠다. 가구점 전단을 시내 곳곳에 붙이는 일을 시작으로 도로공사장에서 돌을 나르는 중노동도 마다치 않았다. 그러다 교회 신자의 소개로 존 홀렌벡이라는 독지가를 만나 동부 펜실베이니아에서 정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었다. 일자리를 찾아 워싱턴으로 옮겨간 서재필은 중국과 일본 의서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다가 의학에 입문, 1892년 컬럼비안대학(현 조지워싱턴대학) 야간학부를 졸업,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의학사가 됐고 1893년 정식으로 의사면허를 받았다. 대학 재학 중이던 1890년 6월10일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

1895년 12월 서재필은 박영효의 권유로 10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왔다. 1898년 5월 미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서재필은 민중의 정치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교육과 언론 활동에 주력한다. 1896년 4월7일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논설을 통해 민주주의, 산업개발, 교육, 여성평등 등을 역설하고 외세 침략과 위정자들의 부패를 비난했다.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에서 목요강좌를 열어 세계사, 세계지리, 정치학 등을 강의했다.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1897년 독립문을 세웠으며 독립협회의 토론회를 발전시켜 1898년 2월부터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직접 정치적 요구를 하는 최초의 대중 집회였다. 그러나 러시아와 일본 측의 추방운동, 조선 수구파들의 공격으로 결국 서재필은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서재필이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든 것은 1919년 3·1운동 소식을 접하고 나서다. 미국 내에서 한국 문제를 여론화시키기 위한 첫 시도로 필라델피아에서 한인들을 소집해 '한인자유대회(The First Korean Congress)'를 개최했다. 1919년 4월13일부터 사흘간 시내 리틀극장(Little Theatre)에서 열린 이 대회에는 한인 150여명을 비롯해 서재필이 초대한 미국인들이 참석했다. 이 대회에서 참석자들은 열띤 토론과 회의 끝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내는 결의문과 미국인들과 미국 정부에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했다. 대회가 끝난 뒤 한인들은 봄비를 맞으며 한국독립연맹(Korea Independence League)이라고 쓰인 플래카드와 태극기, 성조기를 들고 필라델피아 시내를 행진하기도 했다. 서재필의 노력은 결실을 보아 한국친우동맹(The League of Friends of Korea)이라는 조직이 결성되어 미국 내 21개 도시에 각각 3천에서 1만명의 회원을 가진 조직으로 성장했다. 서재필은 또한 필라델피아 자신의 사무실에 한국홍보국(Korean Information Bureau)을 만들고 한국평론(The Korea Review)을 발행, 미국 정부기관·대학·교회 등지에 매월 2천부 넘게 배포했다. 또한 상해임시정부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1922년 워싱턴 군축회의에 독립청원 연명서를 제출하고 1925년 호놀룰루 범태평양회의에 한국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해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기도 했다.

해방 후 존 하지 미군정장관의 초청을 받아 1947년 7월1일 미군정 최고고문 자격으로 50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서재필은 미소 공동위원회에 미국 측 대표로 참석하기도 하고, 라디오 방송을 통해 한국의 미래에 대해 연설을 하기도 했다. 1948년 초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서재필 추대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미 고령인 데다 정치 욕심이 없었고 국내 정계와의 불화에 시달리던 서재필은 이승만 초대 정부가 설립되자 철수하는 미군정을 따라 미국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다 1951년 1월5일 필라델피아 부근 한 병원에서 87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1994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한인들의 공식적인 첫 미국 이민은 1903년부터 1905년까지 65회에 걸쳐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으로 7천226명이 건너간 일이다. 대부분이 노동자들이었다. 1910년까지 이들 중 2천11명이 미국 본토로 이주했다. 본토 철도 노동자들의 임금이 사탕수수농장 임금에 비해 배나 많았기 때문이다. 서재필이 미국 땅을 밟은 지 25년이 되는 1910년경에는 약 2천500여명의 한인이 미주 본토에 살고 있었다. 하와이와 미국 본토에서 한인 자치기구가 속속 결성됐고 대부분이 항일운동에 나섰다. 대표적인 단체가 1909년 결성된 국민회(이듬해 대한인국민회로 개칭)다. 선각자들에 의해 소년병학교, 대조선국민군단, 비행학교 등 군인 양성기관도 운영됐다.

오는 7일은 서재필이 132년 전 출생한 날이다. 미국에 발을 디딘 이후 3년여의 짧은 고국 생활을 제외하고 그는 한평생을 미국에서 살았다. 그를 빼놓고는 미주 한인 이민사회의 역사와 독립을 위한 그들의 노력을 이야기할 수 없다.

미주 한인 이민 113주년을 기념하는 제11회 '미주 한인의 날' 행사가 2016년 1월 11일(현지시간) 오후 워싱턴D.C. 연방하원 캐넌하우스에서 미주 전역의 한인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오늘날 재미동포는 2백2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긴 세월 멀리 타향 미국 땅에서 신산한 삶을 꾸려나갔을 동포들은 이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성장해 주류사회로 속속 진출하고 있다. 2005년 12월 미연방 상·하원은 만장일치로 1월13일을 '미주 한인의 날'(The Korean American Day)로 공식 지정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한인이 미국 땅을 밟은 지 114년이 되는 올해 한인의 날에도 워싱턴D.C. 메릴랜드주, 뉴욕, 하와이 등에서 기념식과 함께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오랜 항해 끝에 처음 샌프란시스코 항구에 내린 순간 청년 서재필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동포들을 통해 그 꿈은 얼마나 실현됐을까, 한인의 날을 계기로 생각해본다. (글로벌코리아센터 고문)

 

제목 조회수 작성일
혼다 전 美의원 "文정부, 한일합의 무효화해야 
2031 2017-10-14 20:05:45
미국 프로 골퍼 렉시 탐슨 
4163 2017-09-11 12:12:11
방송, 사회적 역할과 공적 책임 되돌아볼 때 
3648 2017-09-02 07:38:35
추미애, 출근길 사진 파격공개 
3489 2017-08-11 10:18:41
MBC 취재기자 80명 제작거부…4시 뉴스 결방 
2979 2017-08-11 10:13:28
디트로이트 한인회 회칙위반 심각해. 
3771 2017-08-04 10:48:04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와 '글로벌 리더' 이위종 
3011 2017-07-12 11:21:13
강경화장관, 취임 후 첫 스캔들에 '격노'..감사관실 확충 
2923 2017-07-12 11:08:11
홀인원했다고 거짓말…보험금 타낸 얌체골퍼 등 30여명 경찰조사 
4089 2017-05-23 12:56:02
KCIA 와 KFBI 를 만들어 성장 시키자 
3674 2017-05-06 17:21:27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다음
  커뮤니티
구인 구직 쟙(JOB)
사고 팔기
자유 게시판
관광 정보
추천합니다
총영사관 소식
회사소개 이용안내 이용약관 개인보호정책 제휴안내 광고안내 자문위원단 기부금
detkr.com/Mktimes.com의 모든 콘텐츠나 기사글을 무단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미한국대사관
주시카고총영사관
미주한인총연합회
외교통상부
미국이민국
한미연합회
대한민국전자정부
재외동포재단
디트로이트문화회관
  The Michigan Korean Times Copyright(c) 2005 detkr.com All rights reserved.
PO Box 80821 Rochester, MI 48308-0821 -- Michigan Korean Times LLC. E-mail : admin@mktimes.com Tel: 248-342-8003 Fax: